2024 회고.

2024 회고.

24년에도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다. 차근차근 기억을 더듬어 가며 회고해 보자.

여행

24년에도 해외여행을 많이 갔다. 나열해 보면 아래와 같다.
  1. 괌 (4월)
  1. 방콕, 치앙마이 (7월)
  1. 세부 (8월 ~ 10월)
  1. 삿포로 (11월)
4번이나 갔다니 너무 많이 갔나 생각도 들지만, 역시 여행을 많이 다니면 새로운 경험과 기억들이 많이 생겨서 그런지 한 해를 기억하기 쉽고 시간도 느리게 가는 거 같다!

우선 괌은 미국이라 그런지 물가가 너무 비쌌고 돌고래 투어에서 돌고래를 못 본 기억이 난다 ㅠㅠ 해외에서는 처음으로 렌트를 해서 셀프 투어를 하며 괌을 한 바퀴 돌아봤다. ‘드라이브를 좋아하는 나’여서 새로운 나무, 바다, 풍경에서 드라이브하는 경험이 너무 좋았다!
괌에서 모은 원기옥
괌에서 모은 원기옥

방콕, 치앙마이

방콕, 치앙마이는 지금은 전 직장인 핀다에서 워케이션 + 휴가로 일주일 조금 넘게 갔다. 방콕에 대한 첫인상은 과장을 좀 더 보태서 충격적이었다! 태국은 방콕에 모든 경제, 인프라가 몰빵 된 나라다. 빌딩 숲, 마천루, 엄청 큰 백화점 등 서울과 비교해서 크게 뒤지지는 않겠구나 생각했다. 앞서 말한 것 말고도 방콕에는 구경할 관광지도 되게 많다. 왜 이렇게 많을까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전쟁으로 파괴된 적이 없어서 유적지가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방콕에서는 살 수도 있겠는데?? 라고 생각했다.
치앙마이는 태국의 제2의 도시라고 하지만 방콕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약간 성수 같은 느낌이랄까? 뭘 하거나 볼 게 많지는 않아서 워케이션으로 가면 딱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토바이를 한 번도 운전해 본 적이 없지만, 한번 경험해보고 싶어서 일주일 동안 렌트해서 운전하고 다녔다. 왕복 3시간 동안 운전해서 온천도 갔다 왔는데 3시간은 쫌 힘들더라.. 워케이션으로 많이 오는 도시에서 코워킹 스페이스를 가서 일도 해봤고 유명한 게이바(게이들이 나와서 쇼하는 거에요 오해하지 마세요) 가서 재미난 구경도 했다!
먹을꺼 사서 숙소로 돌아가는 나
먹을꺼 사서 숙소로 돌아가는 나

세부

밑에서 이야기하겠지만 퇴사를 해버렸다. 외부로 티 내지 않았지만 속으로 고민이 많았다. 항상 해외여행을 가면 영어를 좀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는데 이번 기회에 해외로 가서 영어 공부나 해볼까?? 라는 생각이 들어 자료를 찾아봤다. 여러 군데를 고려했는데 제일 빡센 곳은 필리핀 세부라서 그곳으로 6주 동안 어학연수를 가기로 했다. 성향이 P라서 그런가 결정하고 예약까지 다 해버리는데 2주도 안 걸렸던 거 같다.. 나는 왜 이렇게 즉흥적일까..
한국 교육식 영어 공부는 충실하게 했지만 군대를 갔다 와서 따로 영어 공부를 한 적은 없다. 다른 것보다 스피킹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어학원의 파워스피킹 과정을 신청했다. 어학원에 있는 코스 전부 기본 10시간인데 파워스피킹 과정은 그룹 수업 3개, 1:1 수업 6개, 자습 1개였다.
아침 8시부터 시작인데 나는 외부 기숙사에서 살아 아침 6시 40분쯤에 일어나서 와야 했다. 그리고 수업 다 끝나고 집에 들어가면 7시쯤 되었다. 고등학교 때도 이렇게 안 살았던 거 같은데 너무 빡셌다. (나중에는 적응되었지만..) 외국인이랑 말을 해보는 것 자체가 처음이라 첫 주는 너무 힘들었다. 2~3일 차에는 “아.. 그냥 집에 갈까??” 고민하고 환불 규정도 찾아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좋은 친구들도 사귀고 적응할 수 있었다. 스피킹에 대한 자신감도 많이 생겼다.
GPT가 지어준 내 영어 이름 LIAM
GPT가 지어준 내 영어 이름 LIAM
처음 사귀어본 외국인 친구, 날 놀아준 착한 한국 친구들(ㅋㅋ), 너무나 좋은 내 선생님들 덕분에 소중한 경험을 6주 동안 하며 한국으로 다시 돌아갔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 많지만 분량을 위해 요 정도로 마무리!)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스피치를 하게된 나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스피치를 하게된 나
영롱한 졸업장
영롱한 졸업장

삿포로

나의 첫 해외여행은 삿포로였다. 어언 6년 전이었지.. 아마 여자친구가 한 번도 안 가봐서 다시 가보기로 했다. 엔화도 860원일 때 최저점에 사놓아서 더 좋았다. 첫 삿포로 때와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그런데 3박 4일을 갔는데 유난히 시간이 왜 이렇게 빠르게 느껴지는지 여자친구도 공감했다. 물리적으로는 가깝지만 문화적으로는 많이 다른 일본은 개인적으로 흥미가 많다. 25년에도 1~2번은 일본을 갈 생각이다.
눈 맞을랭?
눈 맞을랭?

대외활동

올해는 이직도 하고 여행(어학연수 포함)을 많이 가서 그런가 프론트엔드 개발자로서 대외활동한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멘토링

23년도에 시작한 여러 스터디를 마치고 7월 ~ 8월까지 2달 정도 코드잇에서 프론트엔드 멘토링을 했다. 일주일에 1~2회, 1시간 동안 멘티들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궁금한 부분이나 현직자로서 일하는 나에게 궁금한 점을 질문한다. 멘토인 나나, 멘티들에게도 뜻깊은 1시간이 될 수 있도록 고민하며 진행했다. 하지만 멘토링 스킬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고 느낀다. 사실 멘토링은 돈을 벌고 싶어서 한다기보다 요즘 취준생들이 중점으로 준비하는 것, 취준생의 생각, 멘티에게 질문을 받으며 나 스스로에 대한 기술적 피드백 등을 하며 취업 시장에서 멀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게 주목적이다. 앞으로도 기회가 있으면 꾸준히 참여해 볼 생각이다.
요즘 시장이 너무 안 좋아서 안타깝다.. AI를 개발자 대부분이 사용하면서부터 신입을 더 안 뽑는 것 같다 ㅠ 멘토링이 끝난 이후에도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편하게 연락 주었으면 좋겠다!

글또 10기

23년에 시작한 글또 9기에서 모든 회차 글 제출이라는 엄청난(?) 성과로 9기를 마무리하고 10월 정도에 글또 10기를 재 참여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10기에서는 글을 한 번밖에 제출하지 않았다.. 이거 포함하면 2번.. 25년부터는 정신 차리고 새 출발 하자!

투자

2년 넘게 손절 못하고 있던 카카오뱅크를 손절하고 AI 투자 플랫폼을 이용한 투자랑 코인을 해보기로 했다. 핀트라는 어플에서 AI를 활용해 자동으로 주식을 사고팔고 하는 데 수익률이 꽤나 높다! 신기하다! 돈이 돈을 번다는 게 이런 건가.. 25년도 꾸준히 활용해 볼 생각이다.
코인은 중요한 시기에 큰 도움을 주어 나에게 의미가 조금 다르다. 17년 말 군대에서 리플을 250원에 샀었는데 한 4000원쯤에 팔았던 것 같다. 전역 후 복학해서는 부모님한테 경제적 지원을 받지 않아서 돈이 항상 없었는데 리플을 판 돈으로 졸업 때까지 생활비로 쓸 수 있었다. 20대에 굴곡이 많았지만 학업적 성취를 가장 많이 해야 했던 건 대학교 3~4학년이다. 바쁠 때는 하루에 1~2시간 잔 적도 흔한데, 돈도 없었으면 훨씬 힘들었을 거다.
21년도에도 불장이 왔는데 그때는 돈이 없었다. 주변에 블록체인에 관심이 많은 친구도 있고 나 또한 투자를 하지는 않았지만 코인 시장은 계속 보고 있었다. 올해 초부터 코인을 조금씩 모으기 시작했고 10월 정도부터 코인이 많이 올랐다. 현재까지는 수익률이 +이긴 하다. 근데 언제 -가 될지는 모른다. 상승장이 끝난 건지 이제 시작인지 아무도 모르지만 최대한 보수적으로 행동해 많이 버는 것보단 덜 잃는 것을 중점으로 하려고 한다.

문화생활

국가대표 축구를 봤다. 관중에 압도되었다. TV로 보는 것과 너무 달랐다. 기회가 될 때마다 티켓팅을 해보려고 한다. 흥민이 형 영국에 있을 때 경기를 한번 보러 가고 싶기도 하다.
페스티벌 2번, 10cm 콘서트, 비와이 콘서트, 이 글을 쓰는 시점 어제는 성시경 콘서트를 갔다. 학창 시절, 20대 … 노래를 달고 살았는데 내가 좋아하던 사람들 전성기가 지나가기 전에 많이 많이 보고 싶다!

이직

2년 반 동안 다닌 핀다를 퇴사하고 이직했다. 짧게 이야기해 보면 내가 이직한 이유는 나 자신의 성장이 어느 순간 정체되었다고 판단해서다. 백오피스, 웹뷰 같은 대부분의 프론트엔드 개발자들이 하는 일은 많이 해보았고 관련 일을 하며 일어나는 트러블 슈팅도 많이 경험해서 좀 더 플랫폼적인 일을 해보고 싶었다. 개발적으로도 도전을 많이 하는 회사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2년 반 다닌 직장을 옮기기로 마음먹는 건 쉽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개발 히스토리, 친해진 사람들,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더라도 오래 다닌 회사에서 하는 게 마음이 편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앞으로 10년, 20년 일한다고 생각했을 때 당장의 편함보다는 커리어나 경험적으로 유리한 선택을 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퇴사를 결심했다.
퇴사를 다짐하고 사실 면접은 삼쩜삼이랑 라인밖에 보지 않았는데 운 좋게 삼쩜삼에서 최종 합격을 주었다.
삼쩜삼에 입사한 나
삼쩜삼에 입사한 나
아직 적응 중이라 부랴부랴 정신이 없지만, 내가 원했던 일들을 하고 있다! 열정 많은 프론트엔드 개발자분들도 많아서 좋은 의견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문화라 아주 만족한다! 25년은 삼쩜삼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마무리

연말에는 이직을 하고 적응한다는 핑계로 운동도 한 달에 1~2번 가고 일 외적으로는 아주 나태해진 것 같다.. Notion 관련 라이브러리를 만들다 말았는데 상반기까지 얼추 끝내야겠다. 운동도 1월부터 다시 새 마음으로 다녀야겠다. 24년은 기술 관련 스터디를 많이 못했는데, 25년 회고 때는 많은 내용을 쓸 수 있도록 스터디도 여러 개 해봐야겠다.